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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 이슈와 사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와 영국 왕실

by Keep Learner 2022. 9. 11.

 

지난 2022년 9월 8일, 향상 96세의 나이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하였습니다.

1926년 4월 21일 생으로 1952년 2월 6일 즉위하여 70년 간 여왕으로 재위하였는데요.

 

즉위 전에는 제2차 세계대전을 장교로 참전하여 복무하였고

52년 즉위 후에는 냉전과 영국의 포클랜드 전쟁, 소련의 붕괴 및 탈냉전, 9.11테러와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 

그야말로 세계 근현대사의 산 증인이었습니다.

 

9월 8일 여왕 서거로 인해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애도하고 있는데요.

영국 왕실은 정치에 직접적인 관여를 하지는 않지만 막강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다양한 이슈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영국 왕실과 관련해서는 이야기할 국제관계 이슈가 정말 많은데요.

오늘은 간단하게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엘리자베스의 후손들에 관한 이야기를 짧게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1. 엘리자베스 여왕은 누구인가?

엘리자베스 여왕 / 출처: Wikimedia Commons

엘리자베스 여왕의 이야기는 엘리자베스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The Crown"을 통해

많은 부분이 대중에 공개가 되고 알려졌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영국의 조지6세가 되는 요크 공 앨버트와 요크 공작부인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의 

두 딸 중 첫째로 태어납니다. 첫째가 엘리자베스, 둘째가 마거렛이죠.

 

원래 엘리자베스의 아버지인 요크 공 앨버트는 차남이었고,

그의 형인 웨일스 공 에드워드가 에드워드 8세로 1936년에 즉위를 했기 때문에

요크 공 엘버트는 크게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와 마거렛 역시 상대적으로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기대를 하고 있었죠.

 

하지만 엘리자베스의 백부인 에드워드 8세는 재위를 11개월도 채우지 못하게 왕위에서 스스로 내려오게 됩니다.

에드워드 8세는 윌리스 심슨이라는 미국 출신의 이혼여성과 사랑에 빠졌고 왕실에서 결혼을 반대하자 

왕위 대신 사랑을 선택한 것이죠.

 

에드워드 8세가 왕위에서 물러나면서 당시 왕위 계승 서열 1순위였던 동생인

요크 공 앨버트가 자연스럽게 왕위를 물려받게 되어 조지 6세가 되었습니다.

 

1936년 12월 11일 조지 6세가 즉위하면서 엘리자베스는 왕위 계승 서열 1순위가 되어

공녀에서 공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945년 엘리자베스는  조지6세를 설득하여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됩니다.

 

엘리자베스는 중위로 입대하여 대위로 전역을 하여 영국 왕실의 여성 중에서는 유일하게 군 복무를 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을 참전한 마지막 국가원수가 되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1934년 그리스와 덴마크의 필리포스 왕자를 처음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1939년 해군사관학교를 시찰하던 당시 재학 중이던 필리포스 왕자에게 반하게 되어 서로 편지를 주고 받게 됩니다.

 

이들은 1947년 11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1948년 첫째인 찰스를 1950년 둘째인 앤 공주를 낳게 됩니다.

이후 1960년에는 셋째인 아들 앤드루 왕자를, 1964년에 에드워드 왕자를 낳습니다.

 

조지 6세는 간헐적으로 말을 더듬는 증세가 있었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영국과 영국령의 국민들을 하나로 뭉치는 정신적 지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하였습니다.

하지만 선천적인 건강문제와 흡연 및 과로 등으로 인해 1952년 향년 56세이의 나이로 죽음을 맞게 됩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엘리자베스는 1952년 2월 6일 엘리자베스 2세로 즉위를 하게 되었죠.

 

조지 6세가 서거하고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하면서 영국에서는 새로운 시대에

왕조의 필요성에 대한 여러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었습니다.

전후 어려운 시기 왕조의 필요성과 이를 유지하는 경제적 문제 등이 이의를 제기하는 의견 중 하나였죠.

 

하지만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은 왕실의 인기를 한껏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당시 대관식을 준비하였던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 필립 공은 대관식을 영국 역사상 최초로 TV로 중계하자는

의견을 내놓았고 당시 내각의 논란에도 불구하여 진행한 대관식 중계는 전 세계 2억이 넘는 사람들이 시청하면서

큰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이를 통해 당시 영국 왕실의 존속 문제에 대한 여러 논란은 수그러들게 되었죠.

(현재 영국 왕실 역시 상징적인 존재였던 엘리자베스 여왕의 서거에 따른

커먼웨스의 회원국 유지 문제와 국내 왕실 존속 문제로 크게 고민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엘리자베스는 1952년 성공적인 즉위와 대관식 이후 15명의 영국 총리가 바뀌었고, 미국은 14명의 대통령이 바뀌었죠.

영국사와 세계사에 큰 자취를 남긴 엘리자베스 2세의 이야기는 여기서 줄이고

왕위를 이은 찰스에 관한 이야기해보록 하겠습니다.

 

2. 엘리자베스의 왕위를 계승한 찰스 3세

 

엘리자베스와 필립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난 찰스는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왕세자 자리에서

왕위를 기다려 즉위한 왕위 되었습니다.

 

영국은 왕세자가 웨일스 공(The Prince of Wales)이 되는데요.

찰스는 1958년 처음 웨일스 공의 자리에 올라 2022년까지 그 자리를 유지하였죠.

 

2022년 9월 8일부로 영국왕에 즉위한 찰스 3세는 올해로 73세입니다.

젊은 나이에 즉위한 어머니 엘리자베스와 비교했을 때 재위기간이 길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그 영향력 역시 다를 수 밖에 없겠죠.

 

사실 찰스는 불안정한 왕이며 영국인들에게 큰 인기와 신뢰를 얻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다이애나와의 불화에 따른 이혼과 이후 재혼한 카밀라입니다.

 

찰스는 영국 유서깊은 귀족인 스펜서 가문의 다이애나와 교재 후 1981년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세기의 결혼식을 성대하게 치르고 결혼을 하였습니다.

 

찰스 - 다이애나 부부는 1982년 장남 윌리엄을 낳고, 1984년 차남 해리를 낳았죠.

하지만 찰스는 다이애나와 만나기 이전부터 유부녀인 카밀라와 불륜 관계에 있었고

결혼 후 다이애나가 이러한 사실을 알게되면서 부부의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합니다.

 

이외에도 다이애나는 전 세계인의 폭발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녀의 외모 뿐만 아니라 패션에 더하여 국민들을 사랑하는 자세 등이 인기의 원동력이었고

이때문에 다이애나 일생동안 파파라치에 괴롭힘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다이애나의 성격과 태도로 인해 왕실 내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결국 부부는 1992년 별거에 들어가고 1996년에 공식적으로 이혼을 하게됩니다.

이후 찰스는 카밀라와 재혼을 하여 다시 가정을 꾸렸지만 카밀라는 영국 국민의 환영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혼의 책임이 찰스에 있기 때문에 찰스의 인기 역시 형편없었죠.

 

2010년대 이후 찰스의 대중 지지도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일각에서는 찰스가 아닌 윌리엄이 바로 왕위를 잇는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로 영국 왕실을 분명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주는 안정적인 이미지와 전통적인 상징성이 찰스에게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죠.

영국 왕실에서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입헌군주제를 유지할지, 그리고 

영국 외에 영국 여왕을 국가 수장으로 인정하고 있던 국가들이 과연 찰스를 국가 수장으로

인정할 지 역시 국제관계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일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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